한때 육상계를 호령했던 3명의 스타

누르미와 자토페크 그리고 황영조

 

누르미

“날아가는 핀란드인” 파보 누르미(1897~1973) 핀란드의 육상 영웅이다.  핀란드 사람들은 아직도 그를 “달리는 인간 계”라고 한다.  외국인들을 만나면 자랑이 대단하다.  핀란드 어디를 가도 그의 동상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이다.  그는 올림픽에서만 9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 1만미터,  1만미터 크로스컨트리,  1924년 파리 올림픽 1500m, 5000m,  1만미터 크로스 컨트리,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 1만미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기에 릴레이 경기등 3개의 단체 금메달까지 보탰다.  그는 80번의 크로스컨트리 경기에서 한번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다.  그가 세운 세계 신기록만 무려 33개나 된다.

그는 가난했다. 12살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빵 배달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잠시도 쉴시간이 없었다.  하지만 틈 날 때마다 열차의 뒤를 따라 달리며 스피드를 키웠다.  1996년 6월 미국의 [타임]지는  누르미를  역대 올림픽 선수중 최고의 선수로 뽑았다.

자토페크

체코의 에밀 자토페크(1922~2000)는 “신발을 신은 전갈” 이라고 한다. “인간 기관차”라고도 불린다.  1948년 런던 올림픽 1만미터, 1952년 헬싱키 올림픽 5000미터, 1만미터와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그는 헬싱키 올림픽 이전까지 단 한 번도 마라톤을 완주해 본 적이 없었다.  난생 처음으로 마라톤에 나가  그것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게다가 마라톤 우승을 한 사흘뒤  그 피곤한 몸으로 1만미터에서 다시 금메달을 따냈다.

세계 신기록도 18개나 세웠다.

황영조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는 마라톤 도전 4번만에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월계관을 썼다. 그 이전 그의 성적은 1991년 동아 국제 마라톤 3위 (2시간 12분 35초) 1991년 세필드 유니버시아드 우승(2시간 12분 40초)  1992년 벳부 오이타 마라톤 2위 (2시간 8분 47초)가 전부였다.

5000미터급 산봉우리를 3번 오른 뒤 단 한번만에 에베레스트 정상을 훌쩍 밟은 셈이다.  손기정 선생이 생전에 황영조를 두고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물건인데 계속했더라면 올림픽 3연패는 문제 없는데…. 라며 탄식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황영조는 1996년 풀코스 8번째 완주를 끝으로 무대를 떠났다.

스포츠심리학

” 나의 꿈은 발이 빠르고 근육이 강하며,  영양을 쫒는 것이다.  인간은 애완용 개보다 늑대에 가까우며 무리지어 추적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기질 가운데 하나다.”     -베른트 하인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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